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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불안장애 진단을 받다.

by 캐나다 엄마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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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전에 나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직장까지 5분 안에 달려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늦는다고 구박을 받을게 뻔했다. 저 앞에 횡단보도의 노란불이 빤짝이고 있었다. 아 나는 또 오늘 늦었다. 나는 이짓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매일 아침 나는 내가 원했던 혹은 원하지 않던 일들을 반복해서 해야 했다.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나의 아이에게 화가 나서 또 야단을 쳤다. 어젯밤에 분명 내일은 아이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월요일 아침 오전 7시 반부터 화내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주눅이 잔뜩 든 아이를 유모차에 묶고 냅다 달린다. 달리지 않으면 또 늦는다. 늦으면 직장에서 지겨운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달리는 와중에 생각을 한다. 그냥 받아 들일까? 그래 어쩌면 이 상황들에 순응을 하는 편이 좋겠어. 그냥 사는 대로 생각을 하자 아니 언제 내가 생산성 있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 무기력해진다. 이상한 건 나는 지금 뛰고 있는데 무기력하다는 거다.

 

하지만 이렇게 또 다시 10년을 살고 싶지 않은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아니 그런 것들이 의미가 있기는 할까? 지금의 나는 일터에 지각하지 않게 유모차나 밀면서 달리는 노산한 애기 엄마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일을 하다가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아팠다. 속도 울렁울렁거리고 아 나 이러다 토하겠는데, 슈퍼바이저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하는 곳 모퉁이에 있는 워크인에 갔다. 그날 나는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나는 이제 노산한 애 엄마에서 불안장애가 있는 노산까지 한 애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약 두달간의 병가를 얻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한 달 하고 이주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침에 시간이 많아 아이가 옷투정을 해도 신발투정을 해도 나는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뛰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더 이상은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있고 남편이 직장에 있는 동안 어제 하지 않았던 설겆이와 집청소를 한다. 음악도 듣고 어느 날은 아침에 운동도 했던 것 같다. 한정적인 자유긴 하지만 앞으로 몇 주간은 무언가에 쫓기지 않으면서 살아도 된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숨이 잘 쉬어지는 느낌 뭐 당장의 통장 잔고는 늘어나진 않겠지만 나의 든든한 남편은 걱정 말고 지금을 즐기라고 했다.

아침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골목길에 꽃도 보인다.

시간이 많다보니 읽고 싶었던 책들도 읽고 필라테스도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고 있다. 필라테스를 할 때는 자전거로 이동하는데 바람이 참 상쾌하고 좋다. 가끔 날파리들이 입이랑 눈에도 들어올 때도 있지만 웬일인지 전처럼 화는 나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긴 했다 전보다는..

지금 하는 생각은 내가 지금의 위치에서 무엇을 더 생산적으로 할수 있지 라는 생각들이다. 집을 치우는데 시간을 뺏기기 싫어 옷정리도 하고 안 입는 옷을 버렸더니 옷장에 숨통이 트였다. 나처럼 말이다.

 

여기서 나는 또 배웠다.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더하기 뿐만 아니라 빼기를 잘해야 된다는 것. 나는 그동안 빼기를 잘하지 못했다. 인스타도 해보고 유튜브도 해보고 이것저것 해보려고 한다. 의사가 먹으라고 처방전을 써준 약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먹지 않으려고 한다. 살면서 많은 것을 지키지 못하고 살았지만 그것만은 지키려고 한다. 마약성 약을 먹지 않는 것. 약에 의존할 만큼은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어쩌자고 나를 잘 돌보지 않았던 걸까? 후회가 된다. 

 

그래도 다행인건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바꿀만한 힘이 있고 또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신발끈 매고 달리면 된다. 힘들다는 건 그만큼의 힘이 더 생기고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지금 힘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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